올해 입법고시는 326대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해 경쟁률인 256대1보다 높은 수준이다. 행정고시(35.8대1), 외무고시(22.8대1)와 큰 차이를 보인다.

출세 코스로 알려진 ‘삼시(三試·사법 행정 외무고시)’에 들지 않는 입법고시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고, 승진이 상대적으로 빠르다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최근에는 입법부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이 입법고시를 선호하는 주된 이유라는 얘기가 나온다.

행정부는 국회로부터 매년 국정감사를 통해 현미경 감사(監査)를 받는다. 예산과 법안 등 정책 전반에 대한 동의도 국회로부터 받아야 한다. 국회 사무처가 국회의원들로부터 감사를 받긴 하지만, 이들이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과 예산심의 활동을 돕기에 혹독한 감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상 감시받지 않고, 견제받지 않는 무풍지대(無風地帶)다.

◆ 공고 등 별도의 채용절차 없이 내부 식구 뽑아

견제받지 않는 입법권력 ‘어셈피아’로 초래된 대표적인 폐단(弊端)이 국회 의정연수원 내 ‘시간제 교수’다. 의정연수원은 국회 사무처 산하기관으로 국회의원, 보좌직원, 국회사무처 및 소속기관 직원 등 국회 구성원에 대한 교육과 연수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의정연수원에는 A, B, C 3명의 시간제 교수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입법고시와 국회 수석전문위원 출신이다.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일 국회사무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시간제 전문 임기제 가급 공무원으로 채용돼 별다른 업무를 하지 않으면서 4694만원의 연봉을 지급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국회 사무처와 의정연수원은 공고도 내지 않고 이들을 고용했다.

국회도서관 뒤에 있는 의정관 건물 1층의 의정연수원 교수실
국회도서관 뒤에 있는 의정관 건물 1층의 의정연수원 교수실

진 의원이 국회사무처로부터 제출받은 ‘의정연수원 교수 현황, 교수별 강의내용 및 강의실적’ 자료를 보면 A 교수는 아예 강의 실적이 전무했지만 4694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B 교수와 C 교수는 연간 10시간만 강의하고 같은 연봉을 받았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연봉은 전액 국회 사무처가 국고로 지급한다. 이들 시간제 교수들은 계약 조건상 매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주 3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근무하면 된다.

교수들은 이런 근무조건들이 과도한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에 자문 및 보고서 검토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해명했다.

채용방식도 문제다. 국회 사무처와 의정연수원은 국회 공무원 임용시험 규정을 근거로 들어 시간제 교수직을 공개경쟁 방식으로 채용하지 않았다. 국회 사무처는 “시간제 전문 공무원은 특수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 등이 요구되는 직위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채용하며 통상적인 근무시간보다 짧게 근무한다”며 “국회 내 직장 교육훈련을 목적으로 채용되는 만큼 외부에 인력풀(pool)이 상존하는 것이 아니며 별도의 공모절차 없이 예산의 범위 안에서 임용 약정에 의해 임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회 구성원들에 대한 교육의 전문성은 수석 전문위원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닌데, 교수직은 이들이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이들이 그만한 전문성을 갖고 있더라도 공정한 경쟁을 국회 사무처가 보장하지 않아 이런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령 A 교수는 의정연수원장을 역임한 경력이 있는데,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지 않아 ‘낙하산’ 논란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식이다.

◆ 인사과-연수원, 내부직원 뽑아놓고 평가는 서로 미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 시간제 교수에 대한 평가 시스템도 부실할 수 밖에 없다. 국회
사무처 인사과와 의정연수원은 이들의 성과 평가를 서로 미뤘다. 국회 사무처 인사담당자는 “(시간제 교수의 근무태도) 관련 부분은 의정연수원에서 점검한다”고 했지만, 의정연수원 관계자는 “강의 시간만으로 성과 등을 평가할 수 없고 (교수들의 업무 비중에) 자문 비중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연간 단위로 국회 사무처 인사과에서 평가한다”고 했다.

또 시간제 교수를 두고 별도로 시간제 교수직을 마친 수석전문위원들을 중심으로 겸임교수를 위촉하고 이들에게 강의를 맡겨 이중으로 강의료를 부담하는 문제도 있다. 실제로 B교수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우리 외에도 사무처 각 부서에 흩어진 많은 실무요원들이 같이 참여해서 (교육)한다. 우리는 그 중 한 부분”이라며 “우리는 전체 강사 풀 속의 일정한 부분이고, 예년부터 계속 강의를 맡아온 겸임교수들이 주로 (강의)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역 국회 공무원 시절 의정연수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A 교수는 “나도 박사 학위를 갖고 있고 강의를 하고 싶지만 의정연수원이 강의를 시켜주지 않는다”며 “후배 실국장이나 외부 교수들이 강의하는 강의 원고에 대해서 검토하고 고쳐주기도 한다”고 해명했다.

진선미 의원은 이에 대해 “1년에 10시간 강의 혹은 1시간의 강의도 없이 수천만원의 비용을 지급해 주는 현 시스템은 관피아에서 드러난 온정주의적 폐단의 일면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국회라는 특수분야를 고려해 공개모집 없이 채용된 만큼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취지에 맞게 활용될 수 있도록 투명하고 경쟁력을 갖춘 인력풀 운용 등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 사무처 의정연수원 조직
국회 사무처 의정연수원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