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없다. 조카에게 장례식 관련해서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장례식도 필요 없다. 친척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다. 산골(散骨)로 누가 뿌려주면 좋겠다.

이와 같이 내 뜻대로, 내가 죽은 이후 나의 장례를 비롯해 소셜미디어 계정 정리, 반려동물에 대한 조치 등 삶의 마무리와 관련돼 친척이 아닌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결정할 수 있을까? ‘자기결정권’이 중요시되는 오늘날, 안타깝지만 ‘사후 자기결정권’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사후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내 뜻대로 장례’를 지원하는 NPO법인 등 사업자가 100여 개 정도 활동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일본의 가족구조 변화에 따라 나타났다. 고령자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이들에 대한 노후 간병뿐 아니라 그다음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어지는 사회적 배경에 의해 등장한 것이다. 일본탐방 기간 중 이러한 활동을 하는 NPO법인 두 곳을 방문했다.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인연의 모임(きずなの会)’(관련해서는 일본탐방, 일본사회와의 네 번째 마주이야기 참조)에 이어, 유사한 활동을 하는 단체 중 가장 오랜 역사가 있는 NPO법인「LISS시스템」(LISS는 Living · Support · Service의 약자)을 방문했다. 1993년에 설립된 「LISS시스템」은 일본 내에서 ‘계약가족’, ‘생전계약’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곳이다. 이러한 생소하고 낮선 개념의 단어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떠한 법률에 근거해서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또한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도 이런 제도를 운영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도쿄에 위치한 NPO법인 「LISS시스템」사무실에서 그리고 관련 시설을 방문하면서 ‘내 뜻대로 장례’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설명] 가족 대신 장례를 지원하는 LISS시스템을 만든 마츠시마요카이(松島 如戒)씨가 LISS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 개의 법률적 변화

NPO법인「LISS시스템」이 현재와 같은 서비스를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본 역시 가족 중심의 혈연이 중요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서비스를 하게 되기까지는 두 개의 법률적 변화가 있었다.

첫 번째는 1992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이다. 이 판결은 살아 있는 동안 체결한 계약이 계약자 사후까지도 지속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계약을 체결한 한쪽 당사자가 사망했을 경우, 계약은 자동으로 해지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계약 주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일본 민법 제653조(위임의 종료 사유)에 따라 계약을 체결한 한쪽 당사자인 ‘위임자 또는 수임자의 사망’에 의해 계약이 종료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자신이 죽은 이후의 장례와 같은 ‘사후 사무’를 타인에게 위임하는 계약은 무효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1992년 9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민법 제653조가 강행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이기 때문에, 위임계약의 사후의 유효성과 관련하여 특약이 있다면 사후에도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 이후로 장례를 위임한 ‘사후사무위임계약’이 가능해졌다. 사람이 사망하면 사망신고서 제출과 같은 법적 절차를 행하고, 화장과 납골 등의 업무를 해야 한다. 그 외에 연금, 보험 자격 상실 절차, 거주하던 집의 처리에 관련된 법적 절차와 소지품 등의 정리와 처분 등 상당한 업무가 있다. 그것 중 일부 또는 전부를 「LISS시스템」에 위임하는 것이 사후사무위임계약이다. 이 판결을 통해 「LISS시스템」이 「사후사무위임계약」을 체결하고 장례를 지원할 수 있게 된 첫 번째 토대다.

두 번째는 2000년 4월 일본에서 「임의 후견 계약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것이다. LISS 시스템이 체결하는 계약에서는 ‘임의후견’ 계약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전사무위임계약을 근거로 신원보증 서비스를 시행하던 중, 계약자의 판단 능력이 결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하자. 계약 당사자가 계약을 지속할 능력이 없다면 그 계약은 존속될 수 없게 된다. 이런 경우가 발생할 때, 「임의 후견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임의후견계약 발효의 절차를 개시하여, 임의후견인으로서 서비스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설명] LISS시스템의 모태였던 ‘모야이의 비’ 전경

묘지에서부터 일상의 삶까지

「LISS시스템」이 처음부터 생전계약을 통해 계약가족이 되고 사후사무까지 지원할 계획은 아니었다. 그 출발은 1988년, 종래의 묘지 승계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던 고령자 등의 희망에 따라 ‘모야이의 비(もやいの碑)’라는 일본 최초의 합장 영세공양[永代供養, 절에 미리 돈을 내두고, 매년 기일(忌日)이나 피안(彼岸)의 불사(佛事) 같은 때에 올리게 하는 공양]묘를 만들고 ‘모야이의 모임’을 조직했다고 한다.

이후, 모야이의 모임 회원으로부터 가족이 없는 자신들이 혼자서 죽게 되면 어떻게 무덤에 들어갈 수 있게 될 지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93년 10월 주식회사 「LISS시스템」을 설립한다. 「LISS시스템」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후의 사무위임계약이 유효하다는 최고재판소 판례와 유언에 의한 부담부유증, 제사주재자의 사전지정 등을 바탕으로, 사후사무위임계약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이후 살아있는 동안 고령자 주택입소에 관한 보증인, 입원과 수술 때의 가족으로서의 역할 등, 생전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게 되어, 혼자서 살아가고 혼자서 사망하게 되는 고령자의 의사와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가족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즉 공정증서에 의한 계약에 따라 ‘계약가족’으로서의 업무를 확립하게 된다.

「생전계약」으로 만드는 「계약가족」, 3개의 계약

「LISS시스템」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법적 토대를 바탕으로 “생전”, “임의 후견”, “사후” 이와 같은 3가지 계약에 의해 “살아있을 때”에서 “만일 판단 능력을 잃어버린 때”, 그리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까지를 일관되게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3가지 계약은 ‘공정증서(公正證書)’가 그 신뢰성을 더욱 높인다. 공정증서(公正證書)는 공증인이 공증인법 등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계약 등의 법률행위나 사건에 관한 사실에 대하여 작성한 증서이다. 공정증서의 경우 강력한 증거력과 집행력이 주어진다. 공정증서의 경우 원본은 25년간 공증사무소에서 보관하여 위, 변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LISS시스템」은 강력한 집행력이 있는 공정증서를 바탕으로 ‘생전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가족’이 된다. 사실 가족 간에는 계약은 필요 없다. 하지만 타인에 위탁하기 위해서는 계약이 필요하다. 「LISS시스템」은 공정증서에 의해 ‘생전사무위임계약’, ‘임의후견계약’, ‘사후사무위임계약’을 체결한다.

이 3가지 생전계약을 통해 계약가족이 되면 다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①지금까지 가족이 담당하고 있던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상생활 지원, ②양로원이나 임대 주택의 입주 보장, 병원 등의 입원 · 수술의 돌봄이나 신원 인수 보증, ③치매 등으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지원(임의 후견 계약 · 법적 보호자의 위탁), ④사후에 발생하는 각종 업무 및 사무 처리의 인수(장례식 상주와 유품정리 지원 포함)이다.

「계약가족」의 구조, 3개의 기관

‘계약가족’ 계약은 이용자가 심신 모두 약해진 상태 또는 사람이 사망한 이후에 계약이 이행되는 특수한 위임계약이다. 따라서 이용자를 대신하여 계약이 완전히 이행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체크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족의 역할을 대신하고, 위탁금 등의 비용부담이 수반되는 ‘계약가족’을 원활히 운영하기 위해서는 다음 3개의 기관이 필요하다.

첫째로 계약에 의해 가족의 역할을 맡는 기관으로 ‘계약가족 계약수탁기관’, 현행 NPO법인「LISS시스템」이 이를 담당한다. 둘째로 이용자가 「LISS시스템」과 맺은 계약내용이 확실히 시행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체크하고, 불완전한 부분이나 청구서 등에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시정시키는 권한을 갖는 ‘감시기관’이다. 여기가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것을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로, 「LISS시스템」이 실시한 일의 완전성을 감시기관이 확인한 이후, 그 기관으로부터 지불의 지시를 받아 「LISS시스템」에 서비스 대금을 지불하는 ‘자금관리기관’이다. 직불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은행, 사후사무의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생명보험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보험회사, 자금을 금전신탁에 의해 준비하는 경우에는 신탁회사, 나아가 고육지책으로 자금을 맡아둔 NPO등의 법인이 이에 해당한다. 각자의 역할과 3자간의 관계는 아래 그림과 같다.

생전계약의 핵심 원칙

「LISS시스템」은 생전계약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회보장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고 원활한 운영과 미래에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중요한 기준으로 강조하고 있다.

첫째, 망자의 인권의 확립과 옹호의 원칙이다. 모든 사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가 있다. 이렇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해서는 망자 본인의 의사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망자가 죽었다고 해서 물건 취급 받는 것이 아니라, 망자도 존엄하게 삶을 죽고, 마무리할 권리가 있다는 인권의 옹호가 중요한 원리이자 원칙이 된다.

둘째, 사후 자기결정의 원칙이다. 생전계약은 생전의 자기 의사에 의해 결정한 내용을 사후에 확실히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다. 예를 들어, 죽음을 맞이하며 의상을 스스로 고르고 준비하는 것도 사후 자기결정권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사후 자기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은 장례절차 뿐 아니라, 당연히 무덤에 대해서도 스스로 결정하여 그 내용을 실현할 수 있다. 즉, 본인이 사망한 이후 진행될 절차마다 자기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셋째, 죽음의 자기수용의 원칙이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오랜 동안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피해왔으나, 자신의 죽음의 시작과 끝을 자기의 의사에 따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추구하는 생전계약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다. 죽음의 자기수용은 호스피스에 평상심을 갖고 입원하는 사람들의 훌륭한 삶의 자세로부터 배워왔다고 한다.

넷째, 공익성과 비영리의 원칙이다. 생전계약이라는 사회적 서비스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이익을 얻으려고 하면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무리란, 이용자의 불이익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생전계약은, 비영리여야만 한다. 이미 제시한 바와 같이, 생전계약수탁 주체는 계약의 영구성을 담보하기 위해, 법인이 되어야만 한다. 이와 함께 운영의 임무를 맡는 사람을 확보하는 것과, 운영지침과 그 자체가 비영리여야 한다는 점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나 문제는 비용

「LISS시스템」은 약 1,020만원(102만 엔)을 내야하며 매년 회비도 있다.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은 많은 사람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LISS시스템」에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대략적으로 비용 부분을 정리하면 우선 비용은 두 종류다. 생전계약의 수탁 모체인 리스시스템이라는 법인의 유지운영비와 리스시스템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계약자가 이용할 때의 이용료이다. 계약 시 신청금이 50만 원으로, 그 내역은 리스시스템에 대한 신청금이 30만 원, 감시기관인 일본생전계약등결제기구에 대한 것이 20만 원이며, 분담금(법인 유지비)이 150만 원이다. 계약 수속 완료 후 시스템 유지비(회비)로 월 1만원을 받는데, 이는 일생 동안 받고 있다.

생전사무이용에 대한 비용은 원칙적으로 이용할 때마다 납부하도록 하고 있으나, 그렇기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에 결제기구에 200만 원을 기준으로 하여 예탁하고, 서비스 제공 후 이행상황을 체크한 후 리스시스템에 지불한다. 사후사무의 비용은 사전에 생전에 준비해 둔 재산(결제기구에의 예탁금을 포함)을 결제기구가 유언집행에 의해 가격으로 환산하여, 리스시스템으로부터의 청구서의 정당성을 체크한 이후 지불한다. 기본형사후사무일 경우에는 500만 원을 지불하며, 자유선택형 사후사무는 선태에 따라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

이러한 비용부담은 있지만, 생전계약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수만 명 있다. 그리고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은 5천명을 넘어, 사망한 사람이나 도중에 해약한 사람을 제외하면, 현재 ‘계약가족’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사람은 약 3500명 정도나 된다.

「LISS시스템」의 핵심원칙 중에 하나인, ‘사후 자기결정권’은 아직 한국 사회에 낯설다. 이것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 등에 이에 대한 사회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2015년 이후 1인 가구가 한국의 주된 유형의 가구가 되었다. 그래서 더는 혈연의 가족에게 죽음을 부탁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고 있다면 법․제도도 함께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죽는 그 순간부터 이 별과의 이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시신을 인수해 삶의 마지막을 동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혈연의 가족이 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점점 가족에게만 의지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죽음 이후 삶의 마지막 과정을 내가 생전에 결정하고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맡길 수 있다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사후 자기결정권’ 이제부터 함께 이야기해보자. 다만 일본을 반면교사로 민간이 아닌 공공의 사회보장서비스로 상상해보면 어떨까.

※ 이글은 일본탐방에 동행했던 서울대학교 박지숙 박사가 정리한 눅취록을 바탕으로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가 정리했습니다.

※ 일본 현장 인터뷰에서 경희대학교 정현경 교수와 서울대학교 박지숙 박사가 통역을 지원해주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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